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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가 몰래 남겨놓고 간 신곡 ‘별 같은 그대 눈빛’, 42년만에 출시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4-10-25 10:55:09
  • 수정 2024-10-28 08: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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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신곡 '별 같은 그대 눈빛' 음원 타이틀 이미지 (사진=(주)삼쩜일사) 


1987년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 전설로 남은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의 신곡이 11월 6일 최초 공개된다. 사후 37년만의 신곡이다.


유재하의 불행한 사고 이후 10주기를 맞아 김현철의 프로듀싱으로 추모앨범인 "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재하를 그리워하며"라는 곡은 김종진, 박성식, 송홍섭, 이문세, 전태관, 조동진, 조용필, 장기호, 한영애 등이 유재하를 위한 음성편지를 모은 형식의 음원이었다. 

이 음원에서 이문세는 "때로는 노래하는 그 스튜디오에 네가 몇 소절 정도는 우리도 모르게 몰래 불러놓고 갔었으면 했는데...."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아쉬움이 노래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 

유재하 데뷔 전 대학교 2학년이던 1982년, 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별 같은 그대 눈빛'이라는 곡이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재하와 친분이 있던 밴드 레모네이드(Lemonade)가 만들고 유재하가 부른 곡이다. 레모네이드의 기타리스트인 '유혁'이 이 노래를 녹음했으며, 이 카세트테이프를 오랜 시간 간직하던 중 최근 음원 분리 기술을 통해 유재하의 목소리만 추출하여 다듬고 다시 기타 연주를 입혀 완성했다고 한다. 

유재하의 신곡 '별 같은 그대 눈빛'은 음원유통사 ㈜삼쩜일사를 통해 11월 7일 오후 6시에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유혁씨는 곡을 만들게 된 풀 스토리를 본인의 스레드(클릭) 에 남겼는데, 그 전문을 소개해본다.




사진=유혁씨의 스레드 

유재하


재하는 그가 작곡가 선생님으로 데뷔하기 훨씬 전 한양대 작곡과 재학 시절에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우리 형제와 같이 기타 치고 놀던 사이였다. 당시 모이면 온갖 팝과 롹 음악을 같이 듣고, 그러다가 당시 책방에서 많이 팔던 악보를 백 개 이상 한 권으로 묶어놓은 소위 "팝송 책"을 넘겨가며 촌스럽지 않은 노래는 죄다 같이 부르곤 했는데, 주로 노래는 우리 형제가 하고 재하는 기타만 치게 했었다. 그러면 "형, 나도 노래 잘 하는데"라고 나서서 노래를 하곤 했는데, 그 당시에 듣기에도 재하의 영어 발음이 완전히 원어민 수준이라 "너 영어 어디서 배웠냐"하면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며 "난 원래 귀가 좋잖아" 하면서 익살을 떨었더랬다.

당시 나와 내 동생은 이미 Lemonade라는 밴드에 속해 있어서 대학가요제, 젊음의 행진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곤 할 당시였고, 재하는 딱히 팀을 정하지 않은 채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연주하고 노래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82년 겨울 갑자기 밤 늦게 전화를 하더니 다음 날 당장 어느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캠퍼스 싱어로 나가게 됐는데 자기 곡은 죄다 피아노 곡이라 방송국 사정상 여의치 않으니 우리 밴드가 만든 노래들 중 통기타 반주로 간단히 부를 수 있는 곡을 하나 골라서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유재하야 말로 전설적인 작곡가고 한국 발라드의 역사를 바꾼 사람이라고 기억되는 영원한 국민 음악인이지만, 이렇게 해서 그가 남이 만든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 팀이 앨범을 만들려고 작곡해 놓은 노래들 중에서 그에게 맞는 노래를 고르다가, 키보드를 맡고 있던 한석우라는 친구가 만든 "별 같은 그대 눈빛"이란 곡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서 그걸 전화로 가르쳐 주게 되었다. 바로 그 다음 날 방송이니 낮에 만나서 같이 연습할 새도 없었고, 전화로 가사와 코드를 가르쳐주고는 알아서 연습하라고 했다.


다음 날 밤에는 그 곡을 만든 한석우와 우리 집에 같이 모여서 언제 재하가 방송에 나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라이브로 부르는 걸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는데, 아마 그게 그 퍼포먼스의 유일한 기록일 것이다.

당시 게스트 인터뷰도 꽤 길었는데 그러다가 아쉽게도 그의 기타 조율이 다 틀어졌다. (그가 노래 부르기 편하라고 기타 조율을 한음 낮게 해서 기타줄이 더 예민해져 있기도 했다.)

그 곡은 81년에 작곡한 노래 치고 꽤 세련되게 나와서 들국화의 최성원 형 등 탐내는 사람들도 많았고, 내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재하만큼 그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서 부른 사람은 우리 팀을 포함해 없었던 것 같고, 그 82년 겨울 밤 그 생방송을 같이 들었던 작곡자의 의견도 그랬다.


그래도 그 곡은 우리 팀 것이니 나중에 녹음해서 발표하려고 밴드 버전으로 편곡을 했는데, 재하가 노래 중간에 흥얼거린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서 그 중 몇 음을 내 기타 솔로에 사용했다. 훗날 우리 연습장에 놀러 온 재하가 그 기타연주를 듣더니 "형, 이 기타 간주 잘 나왔는데"라고 하길래 "그거 고음 부분은 니가 만든거다"라고 했더니 자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 씩 웃는데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재하와 음악을 같이 하면 늘 배우는 게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음악 좀 한다는 사람들은 2부 화음 정도는 그냥 연습 안 하고도 즉석에서 넣지만, 음악을 작곡과 다니며 배운 재하는 제대로 계산해서 3부 화음까지 만들어 셋이 다 다른 곡조를 부르게 하곤 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소리가 훨씬 더 풍성해졌다.

당시 재하가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은 England Dan & John Ford Coley, Hall & Oats 등 팝 장르에서도 코드 진행과 멜로디가 화려한 쪽이었다.


재하는 기타실력도 당시 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 웬만한 외국 곡의 기타 솔로도 제대로 다 따고 있었는데, 그것도 귀가 고급이라서 그런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내 동생과 통기타 두 개만으로 Paul McCartney의 “My Love”를 부르고 있으면 그 간주를 electric 기타도 아니고 어쿠스틱 기타로 넣어 주는데 아주 제대로 된 음으로 치는 식이었다.


그 후 1983년에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나서 그가 조용필 밴드에 키보드 주자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녀석은 원래 기타쟁이인데 작곡과 출신이니 피아노도 꽤 잘 쳤더랬다. 그때 발표된 "사랑하기 때문에"로 그는 완전히 작곡가 선생님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재하 본인의 말로는 그 곡의 가사는 전부 사실에 기초한 것이고, 원래의 의미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기 때문에"란다. 


조용필 밴드를 떠나 재하는 김현식 밴드로 자리를 옮겼는데, 현식이 형도 내 대학시절 이촌동 우리 집 바로 앞에 형이 차린 카페에 자주 드나들면서 잘 알던 사이였다. 그 밴드를 통해 "가리워진 길"이란 그의 곡이 세상에 발표되었는데, 그는 김현식 밴드에서 오래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 곡이 아직도 꾸준히 리메이크되어 드라마 등에 나오는 걸 들으면 감회가 깊다.


재하가 만든 노래 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곡은 "우울한 편지"인데, 그건 그 곡이 Bossa Nova 풍이기 때문이다. 나도 Brazilian 리듬을 아주 좋아해서 그 후에도 난 그런 박자의 노래를 몇 개 만들었는데 (이미 발매된 "우리 이제 그만"을 참고하시길), 차이가 있다면 재하의 템포는 아주 느리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음악을 하면 녀석은 늘 내 박자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하곤 했다. 지금도 내가 "우울한 편지"를 연주하면 재하가 한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나오는데, 굳이 변명을 하자면 브라질 사람에게 연주하라고 해도 그 정도의 템포가 나올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느린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 세상은 왜 그렇게 빨리 떠났는지 모를 일이다.


그를 마지막 본 것은 86년 12월 내가 결혼하고 나서 87년 초에 집들이를 한 날이었다. 당시 녀석은 이미 정식 데뷔한 가수라 제대로 멍석을 깔아놓지 않으면 노래를 하지 않는 고집이 있어서 그는 그날 기타만 좀 친 것 같다.

그때도 역시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Michael Franks의 많은 곡들을 같이 했는데, 그가 더 오래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아무래도 리드미컬한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재하는 용인 천주교 묘지에 있는데, 거기에 가보면 그의 묘를 둘러싸고 그가 만든 "그대 내 품에"의 악보 한 소절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재하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으라고 천국으로 가는 우체통이 하나 있다.

그 천주교 공원묘지에는 우리 아버님도 계서서 우리 형제는 지금도 아버님 성묘길에 재하 무덤에도 꼭 들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위스키를 한잔 부어준다.


작년 한국 방문 중 그의 무덤에 가보니 누군가 꽂아 놓고 간 꽃 한송이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를 찾아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고맙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넘쳐나니 묘지에 누가 찾아온 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음악인은 그의 음악이 계속 사랑받고 연주되면 그의 일부는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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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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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25 14:35:16

    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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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g2024-10-25 13:09:27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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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4-10-25 12:30:24

    이렇게 말랑말랑한 기사까지를 아우르시는 프레임메이커 편집장님
    엄청 귀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앞서네요.

    유재하 님의 신곡 발매가 반가운만큼, 오늘 기사를 통해 알게된 음악활동 비하인드도 흥미로워요.
    막연히 요절한 천재 작곡가로 아주 오래된 전설 속 인물로만 여겼는데
    글쓴이 유혁씨와 얽힌 음악 이야기, 김현식 조용필 밴드와의 인연 등 알고보니 우리네와 동시대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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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25 12:13:44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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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om07242024-10-25 11:35:20

    오.... 너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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