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주인공은 '인덕션 쿠커'였다.
방송과 인연을 20년 째다. 과거에 KBS 에서 고발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땐 여러 명의 팀원들과 함께 했었다. 본사 PD, 카메라맨, 보조 스태프들이 함께 움직이며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했다. 기장이라고 불리우는 기사님이 운전하는 KBS로고가 들어간 승합차를 타고 전국을 다녔다. 촬영 현장에서는 모든 스태프가 맡은 바를 충실히 해냈다. 리포터인 나는 현장에 집중할 수 있었고, 카메라맨은 최적의 앵글을 잡았으며, PD는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물은 하나의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이어졌다.
촬영장소가 구도심에 있는 해장국집이어서 주차가 어려웠다. 도보 10여분 떨어진 곳에 차량을 주차하고 카메라 세 대, 삼각대 세 개와 각종 장비를 혼자 이고 지고 나타났다. 나에게 무선마이크를 넘겨주고 이곳 저곳을 돌면서 카메라를 설치하더니 다시 천장에 고프로 광각 액션캠을 설치했다. 내 리포터 촬영분이 끝나자 내 아이폰까지 빌려 슬로우비디오로 해장국이 화로에서 끓는 장면까지 촬영했다. 이렇게 스파게티, 초밥집 등등 서울 시내와 수도권 인근 촬영지 5군데를 홀로 돌아다녔다. 상암 사무실로 12시 다되어 도착했는데 편집까지 하려면 밤을 새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어렵게 촬영한 아이템이었지만 그날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광고로 들어온 '인덕션 쿠커'였다. 오전 6시 생방송 직전 회의에 참석한 '본사 높은 피디'는 인덕션 쿠커가 화재 위험성이 현저히 낮음을 강조했냐고 확인했고 '본사 현장 피디'는 외주 피디와 함께 '그 구다리를 정말 잘 살렸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내가 해당 코너를 진행하면서 십수 km를 걸으며 촬영하거나 밤새 매복을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지만 주인공은 '협찬 광고'를 받은 제품과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제공하던 아침 방송이 광고성 아이템에 집중하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했다.
지상파 방송국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라는 소행성 앞에 멸종해가는 공룡이다. OTT 플랫폼의 부상으로 전통적인 방송국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하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방송 제작이 변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콘텐츠의 완성도, 제작진의 전문성, 방송의 본질까지 흔들리고 있다면, 그 효율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