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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의 전철을 밟나? SNL 코리아 유감
  • 김선 논설위원
  • 등록 2024-10-21 08:26:22
  • 수정 2024-10-21 12: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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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자도 패러디도 아닌 하니와 한강 작가 흉내
  • 그 잘나가던 개콘도 비하와 조롱으로 몰락했다
  • 풍자는 강자를 향할 때 의미가 있다, 기획자들이 깨어있어야

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 최신편이 비난을 받고 있다. 김의성 배우가 출연한 이번 편은 뉴진스 멤버 하니의 국회 국정감사 출석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인터뷰 모습을 다뤘는데 이 두 에피소드가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이다. 


SNL은 지상파 방송의 개그프로그램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치풍자 개그를 꾸준히 보여주며 좋은 반응도 얻었지만 이번 편은 달랐다. 해당 에피소드를 접한 이들은 대부분 ‘대체 어디서 웃어야 될지 모르겠다’, ‘용기내서 국감 증언한 하니에 대한 모욕이다’, ’노벨상 수상자 조롱하는 건 한국 SNL 뿐’ 이라고 분노하며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뉴진스 멤버 하니를 흉내낸 SNL 코리아 에피소드. 지예은 배우를 좋아하는데 이 일로 개인적인 인신공격성 비판을 받고 있어 안타깝다. 

‘풍자’와 ‘패러디’는 특히 코미디 장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풍자(Satire)’  주로 사회지도층의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해 과장된 표현이나 유머를 사용하는데 그 수단으로서, 또는 아예 독립적인 예술 기법으로 ‘패러디 (Parody)’ 가 자주 활용되곤 한다. 잘 기획된 패러디는 기존의 예술이나 유명인, 특정한 사건들을 모방하고 의미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고 풍자의 의도를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초반, KBS의 <개그콘서트>가 ‘봉숭아 학당’ 등 여러 코너에서 풍자개그를 선보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개그콘서트는 주로 대통령이나 재벌, 정치인을 주제로 삼아 그들의 모습을 흉내내고, 시의성 있게 비판하며 지상파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한참 잘 나가던 ‘개콘’도 여성에 대한 비하(김치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조롱(부엉이), 장애, 인종, 외모, 특정 직군에 대한 비하 등 ‘사고’에 가까운 콘텐츠가 잇달아 공개되면서 신속하게 몰락했다. 그렇게 지상파 개그프로가 사라진 후, 정치인과 유명인에 대한 풍자 개그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SNL이 이제 과거 개콘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부엉이' 가 길을 잘못 알려줘 등산객이 실족사하는 정신나간 내용을 보여준 과거의 개콘. 여성은 외모 꾸미기에만 전념하는 무식한 '김치녀' 로 묘사되었고 장애나 직업을 비하하는 내용도 종종 방송되었다. 외모 비하는 기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풍자가 주는 통쾌한 웃음은 '상처'와 '비판'을 통해 주어진다. 때문에, 이를 기획할 때는 ‘인권감수성’과 ‘정치적 올바름’의 안테나를 항상 예민하게 세워서 대상이 될 것과 안 될 것을 구분해야 한다. 풍자는 어디까지나 강자를 향할 때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다. 현대사회의 신흥귀족인 재벌, 정치인, 유명인 등 돈과 권력을 갖고 사회를 좌우하는 이들의 거짓을 고발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주며, 변화를 이끌어낼 때 풍자는 완성된 예술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 


여러 사회적 약자들, 성소수자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난민, 전쟁이나 범죄의 피해자들,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에 대해 다루고자 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 기획의 목적이 무엇이며, 혹시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지, 재미를 줄 수 있는지, 그 재미가 모욕이나 비하를 통한 것은 아닌지를 예민하게 따져봐야 한다. 어떤 이슈가 ‘지금 핫 하다’고 해서, 이거 하면 ‘터질 것 같다’는 흥행의 이유만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확한 목적과 맥락 없이 대상의 특징만을 과장되게 흉내내는 연기는 그 자체로 ‘조롱’이 되고 대상자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 때문에 사회적 약자는 풍자의 대상으로 아예 고려치 않는 것이 안전하다. 애초에 사회적 약자성을 구분해 내고 정도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급진적 사회풍자를 추구하며 '나는 샤를리 앱도다' 운동까지 불러일으켰던 프랑스 잡지 '샤를리 앱도' 의 만평. 이탈리아 지진 희생자들을 라자냐로, 피흘리는 부상자들을 뻰네 파스타로 묘사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 외에도  난민 비하, 이슬람 비하, 영국왕실 비하 만평을 게재해 반발과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SNL 최신 편에 대중들이 불편해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하니와 한강이 '핫한' 이슈이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며 풍자의 대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직장내 괴롭힘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타국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외국인 가수(하니) 의 고군분투를 조롱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한강 작가)의 외모 특징을 무례하게 조롱한 것,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즉각 느꼈기에 분노하는 것이다. 


덧붙여서, SNL은 최근에 자주 의아했고 아슬아슬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비겁한 인간생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그들은 여성 연기자를 민희진 대표로 분장시켜 그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내게 했지만 누가봐도 방시혁 의장과 똑 닮은 연기자가 나오는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고 말줄임표와 물음표(....?) 로 표시했다. 민희진 대표도 엘에이 다저스 모자를 쓴 채 나올 수 있고, ‘과즙세연’도 ‘육즙수지’가 될 수 있지만 오직 방시혁 의장만은 볼드모트처럼 이름도 꺼내지 못한 것이다. 이쯤 되면 SNL 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콘텐츠 방향이 풍자도 패러디도 아니라 ‘약자에 대한 조롱’ 뿐 이 아닌지, 진정 의심되는 지경이다.

  

과즙세연은 되지만 방시혁은 언급할 수 없는  SNL 의 비겁한(아니면 소송이 두려운) 세계관. 이름? 직업? 천 미터 떨어져서 봐도 이건 방시혁이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방. 시. 혁. 

더욱 의아한 것은 SNL이 개그 콘텐츠로서 현재 시점 한국사회의 엄청난 특이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어떤가, 예능 기획하는 이들에게 윤석열정권과 현 정치는 영감의 화수분이며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금맥이나 마찬가지다. 작전세력에게 통장을 '이용당해' 수십억의 재산을  불렸다는 영부인, 그와의 전화통화에 등장하는 '무식한 오빠' 정체, 무수한 범죄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검사를 탄핵하고 판사를 탄핵하고 국회의원들을 방탄 삼아 감옥에  위기를 벗어나 보겠다는 야당대표키높이 구두와 남성용 가슴패드를 착용했다는 미확인 구설에 시달리는 여당대표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오빠’는 상처받을 수도 있겠다), 온 국민을 통쾌하게 할 정치풍자 이슈들이 이렇게 많은데! 노벨상 수상자를 비하하고, 남의 나라 국감에 나선 스무살 가수를 놀리다니 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자기야, 그 명박사랑 통화할 때 '무식한 오빠' 어쩌고 한 거 나 아니지?"
    "아니야. 내가 왜 그런 말을 해. 그거 우리 친오빠 이야기 한 거야. 그 오빠가 좀 그렇잖아. 신경쓰지 마."

몇 년 전, 가수 에릭남이 SNL 에 출연했을 때 제작진으로부터 ‘3분 카레’ 를 주제로 한 연기에 ‘간디’ 분장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고, 다시 방송인 홍석천으로 분장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자 제작진을 설득해서 내용을 바꿨다는 후일담을 본 적이 있다. 에릭남이 겪은 일이 사실이라면, 그 때에도 SNL 제작진은 타국 문화와 소수자 희화화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고 출연자가 기겁하며 제지시킨 셈이다. 


그런데 그런 아찔한 현장이 SNL 뿐일까.

유교문화와 단일민족국가 신화를 오래 믿어온 우리나라는 성별과 인종, 타국 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유독 무감각하다. 같은 언어를 쓰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과만 오래 살아서일까,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2023년에 미국 시사주간지 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에서 세계 79개 국 중 9위를 기록하고 있다. 비슷한 환경인 옆 나라 일본이 23위를 한 것이 다소 놀랍다. OECD국가 중 상위 10위 안에 든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인종차별로 세계 탑 10 안에 든 셈이다. 


예능프로그램의 기획자도 출연자도 거기서 거기가 된지 오래고 새로움도 의미도 없이 연예인들 돈 자랑, 여행 자랑에 자식 자랑까지 메인 콘텐츠로 우려먹는 지상파는 계속 외면당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나 정치적올바름을 조롱하는 풍조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타인의 외모나 인종, 성별을 서슴없이 비하하면서도 ‘‘팩트’인데 어떠냐’ 는 류의 논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눈에 띈다. 하니와 한강 작가에 대한 이번 SNL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기미가 보인다. 조롱이 아니라 흉내 연기라고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연기 자체는 흉내였을지 몰라도 보는 이들이 놀랍고 불편하다면 실패한 연기다. 게다가 ‘핫’ 한 이슈면 흉내내며 조롱해도 되고, 팩트이기만 하면 비하해도 되는 것일까. 

풍자의 대상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적어도 우리가 남의 힘든 순간이나 외모 특성을 통해서 웃고 즐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급하고 무례한 계기에서 나오는 웃음은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 대중문화를 만드는 창작자들,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이들이 더욱 날카롭게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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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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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4-10-21 13:27:37

    "풍자는 강자를 향할 때 의미가 있다."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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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21 13:17:17

    한강 작가 페러디 빙자해서 조롱하면 안되는데 했더니만 이윽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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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21 12:58:01

    맞어 맞어 하면서 첨부터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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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21 11:34:32

    좋은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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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taz12024-10-21 11:04:21

    날카로운 비평!
    오늘도 좋은 글 하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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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21 10:45:16

    자유와 방종을 구분할 줄 알아야 겠습니다. 좋은 기사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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