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에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에 입사해서 처음 배운 일 중 하나가 월말 전에 촬영 진행비 영수증을 모아 증빙을 적어 올리는 일이었다. 종종 사비로 촬영 소품을 구입하고 청구할 때가 있었는데 자칫 영수증을 잃어버리거나 하면 수십만원의 비용을 월급에서 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법카든 진행비든, 회사 돈을 지출하는 일에 대한 원칙은 20대 초반 신입사원이나 경력이 20년 넘은 편집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공금을 쓰는 건 그렇게 엄격하고, 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겐 법인카드가 공돈처럼 우습게 보이나 보다.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6번째 기소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민주당의 눈물겨운 엄호를 보면 그렇다. ’증거없는 기소’, ‘예전에 불송치한 사안이니 사실상 무죄’ 라고 우기는 민주당 의원들부터 ‘김영란법 액수도 안 되는 샌드위치값으로 기소를 하냐’ 는 등, 무지성 쉴드의 대잔치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대표를 비판했던 몇몇 비민주당 인사들이 이번 기소에 대해 의외의 평론을 내놓는 것은 이색적이다.
과거 새민주에 몸담았던 박원석 전 의원은 21일 아침,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이번 기소는)검찰 법집행의 형평성, 공정성의 문제이며 정적의 죄는 끝까지 파헤치고 권력자의 죄는 뭉개는 것’ 이라고 비판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를 무마한 윤석열정부 권익위와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기소한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김건희 디올백이 잘못이라고 해서 이재명 대표의 법카 유용이 없는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이재명 대표의 다른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던 박 전 의원이 공익제보자의 제보를 통해 드러난, 무려 (공소장으로 알려진 것만) 1억 여 원이 넘는 공금유용에 대해 이토록 관대한 것도 어색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관점은 좀 더 아리송하다. 홍시장은 21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절반이 관용차 개인사용 혐의였고 그 외 식사대금이 대부분이었는데 상황이 이런데도 그런 것 까지 기소했어야 옳았나. 정치부재 현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주말, 휴일에 관용차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개인차 카니발을 사용하며 아내도 개인차를 사용한지 오래’ 라고 부연했다.
그런데, 공직자가 주말에 관용차 안 쓰고 가족은 개인차 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당연한 일을 목에 힘주어 자랑스러워하다니. 하긴, 홍시장은 과거 2015년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의혹을 해명하려다가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한 달에 4, 5천 만원씩 나오던 특활비의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 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특활비를 사적으로 쓴 것을 당당하게 말하던 그의 공직관은 그 때와 크게 달라졌을까?
“공공이든 기업이든, 그 어떤 조직에서도 공금을 그렇게 쓸 순 없어요.”
최근에 만난 한 전직 고위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지자체에 근무할 때 출입 기자들과의 식사비 증빙 몇 건을 실수로 누락한 일로 무려 ‘감사원’의 감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 건을 계기로 업무에 대한 진행상황과 성과에 대한 도 차원의 감사도 따로 받았다. 공금을 유용한 것으로 의심을 받게 되니 본래 업무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까지를 검증받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때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고 한다. 물론 이후에는 공금이라면 십원 짜리 한 장도 철저히 기록하고 증빙하고 조금이라도 애매한 일에는 아예 공금 지출할 일을 안 만드는 원칙이 생겼다.
다른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도지사가 그렇게 법카를 썼다면 공무원들은 허위 증빙을 만드느라 엄청난 시간을 썼을테고, 각 부서의 실제 업무는 크게 방해를 받았을 것.” 이라면서 “경기도 감사관실도 직무유기를 한 것이고 위법한 지출에 대한 시스템을 아예 마련했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에서 업무 참고를 위해 만드는 ‘감사사례집’이라는 것이 있다.
사례집은 대부분 예산, 회계 분야의 사례를 맨 앞에 배치하고 있다. 예산, 회계 분야가 전체 목차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많다. 국민 세금의 공적사용에 대한 엄정하고 투명한 관리가 공무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물품구매, 업무추진비의 집행 명목과 증빙, 법인카드 사용 또한 지자체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법카 사용의 허술한 증빙으로 업무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업무상 과실이나 비위를 이유로 공직자를 감사할 때는 감사관실에서 법카 사용 내역부터 들여다본다. 공금에 대한 인식은 공무 그 자체에 대한 인식 수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관 근처 마트에서 법인카드로 부서 간식을 구입해서 발생한 카드 포인트를 개인적으로 적립한 것이 적발되어 주의 조치를 받고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있다. 만약 그가 법카로 1억 여원 이나 유용했다면 그 죄책이 어떠하겠는가.
앞서 박원석 전 의원이나 홍준표 시장이 왜 돌연 이재명 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의 과거 행적과 발언을 통해 짐작만 할 뿐이다. 김건희를 싸고 도는 검찰이 불공정 하다는 박 전 의원의 지적은 맞지만 그것이 이재명에게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온 국민이 비판하고 기억하는 한, 윤석열 김건희의 무능과 거짓도 반드시 청산할 날이 온다고 믿는다. 홍준표 시장은 예전과 변함없을 그의 공직관과 삶의 방식을 별 문제의식 없이 노출한 것 같다. 설마, 아직도 ‘내 한달 특활비가 4, 5천인데 성완종이 돈을 왜 받았겠나’ 같은 자세로 공무에 임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어떤 정파에 속하고, 어떤 배경에 서 있든 다만 상식에 공감했으면 한다.
그 어떤 조직, 그 어떤 회사, 그 어떤 공공기관에서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처럼 공금을 그렇게 쓸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어떤 전직 의원이 법카로 ‘방울토마토’ 를 샀다고 몇 년동안 욕했던 것을 멋적고 부끄럽게 만든게 대체 누구인가. 법인카드로 사적인 비용을 이렇게나 오랫동안 지출하고 이재명처럼 뻔뻔한 사람은 여태 없었다. 국민세금으로 월급받는 공무원을 시켜 음식을 배달시키고 사적인 일정에 수행과 운전을 하게 하는 등, 민간인인 아내를 수발들게 하는 충격적인 직권남용은 경기지사 시절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절대 하지 않는 일, 했다고 해도 부끄러워하고 법적으로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제 좀 털고 가자. ‘그래도 민주당이니까’, ‘윤석열을 끌어내려야 하니까’, ‘김건희는 더 나쁘니까’. 오만가지 핑계로 모욕당해 온, 사람사는 사회의 기본 상식을 더이상 외면하지 말자.
이 기사에 1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법카 개인 사용하라는 법까지 만들려나?
도대체 찢한테서 어떤 희망을 발견했기에 자신의 도덕관,신조,긍지 이런것들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비호하려는걸까요.
똑소리 나는 글 써 주시는 똑순이 김선 님!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막산이 커플 법카 무서운줄 모르고 막 쓸때는 좋았겠지.
상식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이 정치를 해야하는데.. 써니님 글에 절대 공감입니다.
우리 당에 세작으로 잠입했던 무리가 많긴 많았구나
김종민 박원석 김종민 박원석
박원석은 패널들 끼리끼리 문화에 벌써 변질되어 가네요
나이스 합니다~^^**
멋진 김선님의 깔끔하고 명쾌한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 정도로 망가졌군요. ㅠㅠ
박원석씨도 법카유용에 관대해 지신 이유가 심히 궁금하네요
정당에 상괸앖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