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정부가 8·15 광복절 특별사면 및 복권을 의결해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피선거권을 얻게 됐다. 2022년 말 복권없는 사면 이후 2년 만이다.
이 명단에는 조윤선,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인사와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 공작 사건’에 관여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같은 이명박 정부 인사가 포함 됐다. 다양한 인사가 명단에 올랐다는 것이다.
사면, 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각계, 각층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반영한다. 한 핵심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22년 김 전 지사의 사면 당시 민주당으로부터 복권 요청이 없었다고 한다. 본래 김 전 지사에 대한 요청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검토를 하고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의외였기에 명분이 없어 철회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 전 지사는 24년 22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고, 27년 대선에도 도전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김 전 지사의 복권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반발의 목소리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힘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김 전 지사를 이용하려 하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역시 반발하고 있다.
김 전 지사의 복권 소식에 이 대표는 그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대통령에게 요청하고 있었다며 환영한다고 SNS 포스팅을 통해 밝혔지만 대통령실은 바로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며 반박했다.
정치 셈법으로 치면 김 전 지사의 복권으로 인한 정계 복귀는 한동훈, 이재명 대표에게는 악재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민주당의 복권 요청도 없었고, 한 대표의 거센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14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본래 친노, 친문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적자인 김 전 지사를 복권한 것’이라며 ‘친문 윤석열이 친문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눈에 밟혀 살려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 원내대표는 그간 ‘국민의힘 계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대권 주자를 후계자로 만들려는 작업을 시도하지 않을까’, ‘결국 김경수 전 지사를 복권시켜 당시 양정철 (대통령실) 비서실장 후보와 함께 새로운 대선 주자를 만들고, 정계 개편을 시도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천 원내대표의 말대로 윤 대통령은 과연 친문일까?
박근혜 정부 당시 대전 고검으로 좌천 됐던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 사퇴 후 국민의힘으로 입당해 대선 경선을 치렀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정계 진출 선언 6개월 만의 일이다. 선출직 경험이나 정치 경험이 없는 후보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라는 꼬리표와 박근혜 정부 당시 댓글 조작 수사, 박근혜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의 이력은 국민의힘 내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 데다가 지난 대선은 선호로 인한 싸움이 아닌, 누가 더 비호감인가에 의한 싸움이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반발과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 등의 반사 이익을 얻으며 이겼다.
정계 진출 6개월 만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이력은 당선 이후 운신의 폭을 더 좁게 만들었다. 대통령 인수위 구성은 물론 이후 내각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참사와 악재를 빚어내기도 했다. 당선 직후 청와대에서 용산 대통령실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의하면 용산으로 이전 직후 사무 공간에 책상조차 없었다고 했다.
한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30%대를 유지하지 못해 20% 초반으로까지 내려갔다. 초반부터 레임덕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정권 초기에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배경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를 극우로 틀게 만들었다. 극우의 콘크리트만 지키면 30%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보인다. 15일 광복절에는 국영 방송인 KBS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영했다. 수많은 버전 중에서도 기미가요가 삽입되는 버전이었다. 실세 차장이라고 불리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의중이 상당히 반영된 외교 정책을 펼쳐나갔다. 안보실장이 세 번이나 교체되는 동안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김태효 차장은 친일 사상이 강한 인사다. 논문 ‘한·일 관계 민주동맹으로 거듭나기’(2006년)에서 일본 자위권의 확대를 주장했다.
극우층 겨냥과 함께 또 한 가지 방책은 전 정권 때리기로 인한 지지율 반등이다. 정권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를 향한 수많은 수사가 진행 됐다. 국가 통계조작,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살해 의혹 용의자 강제 송환 사건, 울산 시장 선거 개입 등이 있다. 게다가 대통령을 대신해 인도를 방문한 외교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그럼에도 지지율 반등 효과는 거의 없거나 미미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행보만 보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상승을 위해 당장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철학과 긴 안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다. 친문이었다면 앞서 언급한 전 정권을 향한 표적 수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을 친문으로 몰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과 보수 지지층의 기반이 없는 대통령을 더 궁지에 몰려는 속셈일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있었지만 이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당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 배경에서 윤 대통령을 친문으로 모는 것은 더욱 더 보수 지지층의 기반을 흔들려는 속셈일 것이다.
대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후보는 서로 의기투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많은 잡음을 내며 결국에는 이준석계인 천아용인이 탈당해 신당을 창당했다. 그런 입장에서 천 원대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해 거센 비판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 윤 대통령을 흔들어서 그 파이를 차지하는 것이 현재 개혁신당의 전략일 것이다.
어떤 일이나 사건이 복잡할수록 단순화 하면 해답이 보인다고 한다. 모두가 긴 안목이나 철학, 방향성 없이 각자 자신의 이득으로만 발언과 행보를 내보이고 있다. 제 1 야당의 대표로 당선되기까지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의 연이은 세 번 낙선으로 마삼중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준석 의원은 화성시 을 지역구에서 당선돼 원내로 진출했다. 지역구 내에 있는 100개의 아파트 단지를 모두 방문해 특성과 민원 사항을 모두 정리한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정쟁이나 거대 담론 보다는 민심을 향한 구애가 통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열망과는 달리 다시 정쟁에만 힘을 쏟는 것 같다. 비전이나 정책보다는 제로섬 게임으로써 비난으로 상대방에게서 지지율을 탈환할 생각만 하는 정치와 국회의 현실에 국민은 언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