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으로 9월 1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ABC 방송 주관으로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후보 토론이 있었다. 미국을 넘어 세계와 한반도에 영향을 줄 미국 대선의 중요 이벤트, 이번 토론을 둘러싼 이모저모와 가십, 전망을 알아보자.
1. 해리스 그리고 트럼프, 후보들의 목표
[해리스의 목표] - 나는 대통령깜이 됩니다!
해리스 입장에서는 대선후보로서 처음으로 하는 TV토론이고 트럼프와의 직접 대면도 처음이다. 부통령시절 방송 인터뷰에서 미숙함을 보여 비판받았던 과거를 극복하고 자신이 ‘대통령감’ 임을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중요한 토론이었다. 거친 매너와 돌발행동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트럼프 특유의 '포스'에 밀리지 않으면서 토론에서 득점해야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건 검사 출신인 해리스가 재판 중인 트럼프와의 구도를 ‘검사 대 범죄자’ 로 각인시키고 공격적인 토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해리스 캠프에서 지난 대선 토론 이후 상대방 발언시 마이크를 끄는 룰(트럼프가 바이든 발언 때 하도 끼어들어서 생긴 룰)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ABC에 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이라면 그만큼 캠프가 후보의 토론 역량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목표] - 백악관 주인공은 나야 나!
트럼프의 목표는 해리스 바람을 잠재우고 토론을 통해 ‘실패한 대통령’ 인 바이든보다 못한 사람, 한낱 ‘부통령’으로 묶어두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멕시코와의 국경 문제, 이민자 유입, 경제위기 문제 등을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 부통령의 공동책임으로 규정하고 해리스를 ‘급진좌파’ 로 몰아가(이미 온라인을 통해 실컷 했던 인종과 성별에 대한 비난은 지양하면서) 토론의 주도권을 잡을 계획이었다.
반면 트럼프 캠프의 참모들은 해리스의 도발에 말리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라고 계속해서 조언했고 공화당 의원들은 인신공격이나 인종차별적 발언은 자제하고 ‘정책 이야기만 하라’ 고 주문했다는데 후보가 그런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분위기였다.
2. 결과부터, 둘 중 누가 이겼나?
<여론조사는 해리스 승!>
토론 직후 실시된 CNN 긴급 여론조사는 해리스의 승리로 나타났다. 해리스가 잘했다는 응답자가 63%, 트럼프가 잘 했다는 응답자가 37%였다. 지난 7월에 진행된 바이든 VS 트럼프 토론에서는 트럼프 67%, 바이든 33% 이었으니 딱 반대의 결과가 나온셈이다.
<자축하는 민주당, 수습하는 공화당>
민주, 공화 양당의 반응도 ‘해리스 승’ 에 더 우세한 분위기다.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며 해리스와 면접까지 봤던 조시 샤피로 팬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해리스는 리더십을 보여줬지만 트럼프는 횡설수설만 했다.” 라고 자축한 반면, 한 때 트럼프의 외교멘토로 알려진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토론을 보면서)TV화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고 털어놓았는데 패착의 원인에 대해서도 “토론 팀(캠프)의 문제는 아니다” 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레이엄 의원의 발언은 이번 토론의 가장 큰 패인이 후보인 트럼프 개인(팀이 아니라)이라고 진단한 것이라 트럼프로서는 뼈아픈 질책을 받은 셈.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최근 본인의 실언으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J.D 밴스는 트럼프의 ‘개, 고양이 발언’을 진화하려 시도했다. 그는 트럼프 발언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대해 “(그의 발언이)사실이 아니라는게 아니라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 라고 일축하고 “우리 선거사무실에는 이민자들에게 개와 고양이를 납치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탄식과 다급한 수습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반응도 대체로 해리스 쪽에 기울어있다. 미국 정치매체 ‘더 힐’ 은 “(공화당이) 백악관으로 가는 길이 좁아졌다.” 라고 평가했고 ‘폴리티코’ 또한 “해리스가 계속해서 트럼프를 짜증나게 했고 트럼프는 해리스가 던지는 미끼를 계속 물었다.” 고 전했다.
3.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인사와 시선처리
<먼저 악수를 청한 해리스>
부통령에서 돌연 대선후보 지명을 받은 이후 해리스의 스타일과 태도가 바뀐 것을 눈치챈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해리스 후보는 바이든 대통령의 부통령에서 대선후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태도(자주 웃는 것은 자제하고 진지한 태도 보여주기)와 의상(플랫슈즈나 세퍼레이츠 정장보다 하이힐과 리본타이 블라우스, 어두운 색의 수트 착용)을 정비하고 차분하고 신뢰감이 드는 연설을 위한 발성코치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제 토론 초반에는 진한 남색 바지정장 차림의 해리스 후보가 먼저 트럼프 후보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장면이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지난 6월 바이든 VS 트럼프 토론 때 두 후보가 ‘악수 패싱’ 후 토론 난타전을 벌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토론회를 생중계한 ABC 방송은 "두 후보의 악수로 8년 연속 대선 토론에서의 '무악수 기록' 이 깨졌다." 고 논평했다.
패션매거진 'Elle' 지에 자문한 심리학자 폴 브로스는 해리스가 악수를 먼저 청한 것은 "계산된 움직임" 이며 악수할 때 트럼프가 약간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 악수는 단순한 예의차리기가 아니었습니다. 해리스는 주도하는 것 처럼 보이려고 했고 먼저 악수를 청한 건 트럼프에게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하는 행동이었죠."
<상대를 보지 않은 트럼프>
약간 멈칫한 듯 보였던 트럼프는 해리스의 인사와 악수를 받아주었고 ‘재미있는 시간 보내라’ 며 무난하게 응대했지만 정작 상호 토론시간에는 내내 해리스를 무시하며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트럼프는 거의 카메라만 응시하며 발언했고 해리스와는 상호작용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대신 토론회 중에 트럼프가 가장 많이 상호작용을 한 대상은 바로 토론회의 두 진행자들. ABC 방송의 두 앵커나 트럼프 발언에 대해 팩트체크를 할 때 마다 트럼프는 ‘내가 말하고 있다!’고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려보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4. 가짜뉴스 공격 vs 표정 공격
<무리한 주장과 공격으로 일관한 트럼프>
트럼프는 ‘정책에 집중하라’, ‘해리스의 도발에 말리지 마라’ 는 참모들의 간곡한 조언에 아랑곳 없이, 발언 점유시간인 28분(해리스는 21분)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해리스에 대한 인신공격과 온라인발 가짜뉴스를 근거로 거칠게 공격했다. 내용적으로는 지난번 바이든과의 토론 때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국경 문제 등) 태도는 훨씬 과격해졌고 공화, 민주 모두가 고개를 저을 만 한 충격적인 발언도 했다.
특히 놀라웠던 대목은 이민자들에 대한 발언으로 트럼프는 “스프링필드에선 이민자들이 우리의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고 주장했던 부분. 게다,가 “해리스는 출생 후 사형집행(낙태를 의미)에 찬성한다고 말했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가 정착시킨 미국 대선토론의 룰인 실시간 팩트체크에 의해 이런 발언들이 바로 반박되긴 했지만 트럼프는 굴하지 않고 진행자들에게 반박하며 본인 주장을 이어갔다.
이번 토론 중에 뉴욕타임즈는 40건, CNN은 30건의 후보자 발언에 대해 팩트체크를 했는데 NYT 는 트럼프의 발언 33건 중 16건에 대해 ‘거짓’ 으로 판단했고 CNN은 26개 중 15개를 ‘거짓’ 으로 판단했다. 해리스 후보의 발언은 단 두 건만이 ‘거짓’으로 판단됐고 몇 개는 ‘맥락필요’, ‘오해의 소지’ 등으로 판단되었다.
<표정과 몸짓으로 역공한 해리스>
바이든 VS 트럼프의 첫 대결이었던 지난 46대 대선 토론 이후 미국 대선 토론은 상대방이 발언하면 다른 쪽의 마이크가 꺼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바이든 발언 중에 계속 트럼프가 말을 끊고 룰을 어겼던 전례 때문인데 이 룰 대로 지난 6월에 진행됐던 토론에서는 강제적으로 조용할 수 밖에 없던 트럼프가 오히려 차분해 보여 노쇠해 보이는 바이든에 비해 도리어 이득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었다.
이번 토론 직전에 해리스 캠프에서 이 마이크 룰을 없애달라고 요청했지만 반영되지는 않았는데 대신에 해리스는 자신의 마이크가 꺼진 시간 동안 다양한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의 무리한 발언들(‘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 ‘해리스는 마르크스 주의자다’) 이 나올 때 마다 다양한 표정과 손짓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했는데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응시하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가 하면 특정 발언 부분에선 눈을 찡그리고 손을 턱에 가져다 대는 등 표정으로 언짢음과 황당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동시에 트럼프의 범죄사실과 자질문제를 거론하며(“내가 부통령으로 전세계를 다녀봤는데 트럼프가 미국 대선후보라고 하면 세상이 비웃는다.”, “당신이 그런 식이라서 공화당원들도 나를 지지한다.”) 트럼프를 자극하기도 했다.
5. 온라인 밈이 된 대선토론
소셜미디어 시대의 정치 이벤트 답게 이번 토론도 온라인 상에서 수많은 밈(Meme)을 낳았다.
트럼프가 거친 발언을 할 때 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던 해리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밈으로 확산되었는데 그 중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더 데일리 쇼’의 X계정은 트럼프와 해리스의 표정을 대비한 화면에 ‘당신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이미 엄마에게 사실을 말했을 때’ 라는 설명을 붙여 호응을 얻었으며 해리스의 표정들에 다양한 상황을 대입한 밈이 하루종일 화제가 되었다. 해리스가 토론 중에 표정으로 적극 응수한 것은 이런 온라인 상의 밈 확산을 염두에 둔 토론전략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반면 폭스뉴스는 해리스의 다양한 표정과 반응들에 대해 '끔찍하게 예의없다', '비참한 모습' 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충격적인 문제 발언(“스프링필드에선 이민자들이 우리의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 또한 온라인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실시간으로 토론을 시청하던 커뮤니티 유저들, X 사용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그(트럼프) 가 혹시 심슨 가족(미국의 애니메이션) 안에 산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배경이 되는 도시가 ‘스프링필드’) 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심슨 가족의 장면을 패러디한 트럼프 밈을 퍼뜨리기도 했다.
6. 토론 후일담과 전망
<2차 토론, 열릴까?> -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일 듯
토론 직후 트럼프는 기자단에게 가서 ‘이전 토론보다 더 잘했다’ 며 자신의 승리라고 말했고 페이스북에도 ‘오늘 대승을 거뒀다’ 고 게시했지만 당당함보다는 조급함이 엿보인다는 평. 원래 기자들 앞에서 여러 이야기를 잘 하는 트럼프지만 지난번 바이든과의 토론회에 비하면 확실히 평정심을 잃었고 발언수위도 높아졌으며 진행자들에게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 때문에 당내 평가도 우호적이지 않다.
해리스측도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며 트럼프측에 즉시 다음 토론을 제안했지만 트럼프측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바로 다음날인 9월 11일에 9.11 희생자 추도식에서 둘은 다시 만났지만 인사만 나눴을 뿐 2차 토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곧 트럼프는 “내가 이겼는데 또 할 필요가 없다.” 2차 토론 제안을 일축했다. 트럼프측이 호응하지 않으면 2024년 미국 대선 토론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설득을 위한 양측의 전국 순회 유세전, 정책발표와 장외토론, 온라인을 통한 메시지 선전전을 중심으로 11월까지 진행될 것이다.
<누가 이길까?> -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번 토론에서는 해리스가 우위를 보였지만 미국의 유권자들은 여러 경험을 통해 토론에서의 승리가 반드시 본선에서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가 지나간 후 해리스와 트럼프의 지지율은 현재 초박빙(뉴욕타임즈 9월 8일 발표 결과 해리스 47%, 트럼프 48%) 이고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 탓에 여론조사나 온라인 상의 분위기를 쉽게 믿을 수도 없는 상황. 때문에 왠만한 전문가들도 승패를 전망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토론 직후 미국과 한국의 여러 기사들, 전문가 인터뷰들을 종합하면 9월 중순인 지금의 정보들로 2024 미국대선의 승패를 내다보는 것은 무의미하며 11월에 “'샤이 트럼프(Shy Trump)' 표가 얼마나 있는지, 여론조사에 안 잡히는 표(특히 남성 청년) 가 어디로 갈 것인지가 관건" 이라는 진단이 중론이다.
이 기사에 1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김선논설위원님 덕분에 미대선토론 직접 시청한 것 같아요. 브리핑과 분석에 감사드립니다용
잘 읽었습니다. 누가 이겨도 우리에겐 좋지 않은 상황 같아 씁쓸하네요. 전 세계가 인물난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득이 될지는 가늠이 잘 안되지만 기사를 읽고 나니 오르락 내리락 하는 미대선의 경쟁구도가 한층 재밌어 지네요-
지금까지 읽은 트럼프와 해리스 관련 기사 중 가장 정리가 잘 되었네요. 최곱니다.
기사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누가 되는것이 우리나라에 유익한지도 분석해서 가사로 올려주시면 흥미롭게 읽을것같아요.
기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국내 언론사의 피상적인 내용보다 한발 더 들어간 기사,
미국대선의 흐름을 엿볼수 있어 좋았어요.
관련한, 기사들 계속 부탁합니다.
잘 정리된 글 덕분에 미대선 보는 재미가 있네요
좋은 글입니다. 감사해요.
좋은 기사덕에 요지경속인 미 대선상황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트럼프 아저씨가 이재명같으면서도 훨씬 훌륭한 점은 미국을 위한다는 점이네요.
이재명은 자신만을 위하구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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