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정감사가 25일에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번 국감은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로 나름 기대를 모았지만 국회 내부는 물론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역대 최악의 국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임기시작 96일 만인 9월 2일에 지각개원한 탓에 보좌진들의 준비기간이 부족했다는 변명도 있지만 국정감사의 수준이 이 정도로 추락한 원인은 우리 정치의 전반적 퇴행과 감사주체들의 자질부족 탓이 크다.
애초 국민의힘은 김건희 여사 문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방탄에 각각 얽매인 채 전쟁처럼 국감에 임했다. 국감 초기에 터진 김대남, 명태균 녹취와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 문다혜 씨 음주운전 사고는 양당의 전의에 불을 지폈다. 거대 양당은 국감 대비 당내 기구를 출범시키며 상대 진영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국힘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범죄혐의 수사 촉구와 전정부 공격을 공언했고,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의혹을 기점으로 탄핵의 시동을 걸겠다는 뉘앙스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때문에 ‘국정에 대한 실태파악과 감시, 비판, 입법활동을 위한 자료 취득’이라는 국정감사의 취지는 흔적도 없이 증발되었다.
특히 법사위와 과방위에서 위법과 방탄, 정쟁의 추악한 모습이 두드러졌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법사위 국감 질의 중에 이재명 대표 재판부 변경을 사실상 청탁했고,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은 뜬금없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정부를 공격했다.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한 뉴진스 멤버 하니를 의원회관 정문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국감 중인 상황에서 다른 위원장실에 있는 하니를 만난 것이 드러나 여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악용한 무리한 의혹제기와 증인 모욕주기, 막말과 고성도 빠지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막말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몇 수 위였다. 과방위의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이 인상적이었는데 김의원은 회의 진행 중 김태규 증인을 향해 ‘입 닫고요’ 라는 막말을 했다. 그런데 이후에 본인이 한 말(입 닫고요) 을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에게 그대로 돌려받자 ‘박의원이 국회법 145조와 146조를 위반했다’며 경고해달라고 위원장에게 요청하는 내로남불 코미디를 선보였다. 방통위원장 대행인 김태규 증인 또한 줄곧 적대적인 태도로 감사에 임했는데 그 와중에 방통위 직원이 기절해 실려가자 숫자 욕을 해 빈축을 샀다.
박지원 의원은 서영교, 박균택 의원 등과 함께 증인에게 ‘야! 너! 내가 5선 의원인데!’ 라며 고성을 질렀고 국방위에서도 부승찬 의원이 급발진 분노를 터트렸다. 양문석의 ‘기생집’ 과 ‘지랄’ 발언, 김우영의 ‘법관 출신 주제에’ 등 기억 나는 것만 이정도다. 일부 증인들의 자료 미제출과 불성실한 태도도 문제였지만 그렇게까지,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분노할 지점이 있었을까? 그들의 고성과 분노에는 명분도 맥락도 없었다. 자당 지지층을 향한 ‘과시용 분노’, ‘나 좀 봐주세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국민의힘 의원들도 온갖 궤변과 억지논리로 김건희 여사 의혹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실패를 방어하기에 힘썼지만 윤-한 갈등과 대통령실의 연이은 실책 탓에 예전같이 맹목적으로 임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전반적인 태도의 불량함과 막말의 저급함 면에서 민주당의 역량(?)이 국민의힘을 압도했다.
국감을 집중적으로 다룬 유튜브 시사 정치 채널들은 홍해가 갈라진 듯 정확히 반반으로 대조적인 논조를 보였다. 질의 중에 막말을 한 민주당 의원에 대해 친 민주당 성향 채널에서는 '쩔쩔 못하게 한 핵심질의' , '분노의 집중질타' 로 다뤘고 친 국민의힘 성향 채널은 'ㅇㅇㅇ의 막말로 인한 파행', '뜬금없는 고성' 이라고 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내 편이면 어떤 막말을 해도 잘한 일이고, 남의 편이면 아무리 상식적인 말을 해도 막말이라는 노골적 진영주의와 정치적 양극화의 모습이었다.
‘태도가 본질’ 같은 고상한 말 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건 단단히 잘못됐다.
국회 아니라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런 추태는 용납될 수 없다. 대부분 중년 이상인 인사들이 자제력을 잃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욕설과 막말을 하는 모습을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보게 되는 무대가 국회 국정감사라니. 목격할 때 마다 놀라는 것도 이제 질리다 못해 지칠 지경이다.
특히 민망한 것은 화낼 상황이 아님에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증인에게 일부러 모욕을 주는 장면을 볼 때 였다. 문체위 국감에 출석한 김택규 배드민턴 협회장에 질의하는 민주당 김윤덕 의원의 영상은 이번 국감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안세영 선수에 대한 배드민턴 협회의 전횡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비판했지만 계속해서 ‘싸가지 없다’ 를 연발하는 김윤덕 의원의 질의는 협회장에 대한 비판의 정당성을 사그라지게 하는 그저 ‘모욕’ 이고 ‘추태’ 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태도'는 곧 '본질'이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상대의 인격을 인정 하지 않는 태도, 비열한 조롱과 모욕, 명분없는 분노가 전제된 말이라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니 말이다.
국회 내부의 평가도 냉담하다. 민주당 보좌진으로만 10년 넘게 근무한 한 인사는 ‘욕설이 정치의 ‘뉴 노멀’이 됐다’ 고 말했다. 그는 ‘사법리스크 이슈에 얽매이다 보니 의원들의 질의 수준이 떨어졌고 서로를 아예 대화 상대로 보지 않으니 양당이 함께 하는 회식이나 간사간 대화도 없어져 국감장 분위기가 매일 살벌했다’ 고 털어놓았다.
여야 보좌진들은 국감 질의의 목적보다 유튜브와 자기홍보에 목을 매는 의원들의 욕심을 공히 지적했다. 의원들이 질의를 통해 기관의 답변을 받거나 문제를 시정하겠다는 생각보다 국감장에 들어온 언론사 카메라들을 더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보좌관은 '언론사 유튜브의 국감영상과 쇼츠는 센 발언을 하거나 소리 잘 지른 의원들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그런 것들의 조회수가 ‘터지니’ 의원들이 거기 나오고 싶어서 엄청나게 신경쓴다’ 고 전했다. 특정 상임위의 정책전문가로 오래 일한 한 국민의힘 보좌관은 ‘이제는 의원들이 질의서의 신빙성이나 설득력 보다는 ‘쇼츠 각’ 나오게 쓰라고 한다’ 며 한탄했다. 의원실 홍보업무를 주로 맡아온 민주당 비서관은 ‘언론사에서 의원의 질의를 (기사로) 안 받으면 의원이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엄청 준다. 언론사에 직접 연락해서 우리 의원 질의도 영상에 좀 나가게 해달라고 거의 빌면서 부탁한 적도 많다. 본인이 잘못 질의해서 홍보할 만한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데 의원실에 ‘쇼츠 만들어라, 조회수 올려내라’고 닥달을 하니 내용도 없는 영상에 자막만 ‘사이다’ ‘송곳질의’ 붙여서 찍어낸다’ 는 자조를 덧붙였다. 대체 의원들은 무엇을 위해 국감을 하고 무슨 일들을 시키고 있는가.
막말과 욕설, 온갖 추태를 뒤로하고 2024년 국감이 어쨌든 끝났다.
그러나 22대 국회는 사실상 이제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2년 반이나 남았고 22대 국회 임기도 3년 반이나 남았다.
어느 쪽이 우리를 더 분노하게 하고 더 진저리치게 할까.
이 기사에 20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뉴스에 관심끄고 살지만 국감뉴스는 어떻게든 귀에 들어오네요 너무 한심해서 애들보기 정말 부끄러워요 ㅠㅠ
김선 논설의원님 ~ 기사 잘 보고갑니다. 감사해요
너무 추잡한 오물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이랍시고 있으니 우리의 자녀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국민 입장에서 국감에서 건진게 없다는게 너무 슬프네요 ㅠ
기사 잘 읽었네요.
언제쯤 자질미달인 자들이 사라질까요.
사람들이 진영에서 깨어날때이겠죠.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요즘 정치를 보면 진짜 질리고 너무 협오스러워요
국회의원은 우리네보다 최소 1그램 정도는 나은 줄 알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 22대 국개들 중 일부는 지하 세계의 인간 군상들과 다름 아니었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극혐의 체험을 하셨을 프레임메이커 논설위원님께 진심으로 경의를....ㅠㅠ
의원들 수준이 바닥이니 그들을 보좌하는 사람들 수준도 처참하겠죠~!! 11월에 비가 내리면 좀 나아질런지......
싸울때 목소리 큰 사람이 지는 건데 그걸 모르나 보네요. 그리고 말 많은 사람도 지는 것이 법칙이예요 정치인들이 이 법칙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예리한 지킴이 시선입니다
누가 누가 더 질리게할까?
진짜 막상막하지요
여의도가 옛날 난지도가 돼버렸군요 ㅠㅠ
그나마 이런 언론 이런 좋은 글이 마지막 보루가 되네요~잘 읽었습니다~^^**
국내도 국외도 이렇게까지
쓰레기가 될 줄을 누가 짐작을 했을까요?
국회의원 수준이 일잔 국민을 밑도는 수준인데 제발 국민들 관심 좀 가지고 국회의원 저금한 인간들 뽑아주지 맙시다
혐오사회의 끝판을 보여주고있는 우리 국회 걱정을 국민들이 하고있으니 쩝.
잘읽고 갑니다.
이럴수록 더 관심 갖고 참여해야겠죠 벽에다 대고 욕이 라도 할랍니다.
국개들 수준이 나아 지기는 커녕 점점 더 바닥이네
정상적인 정치인들이 많이 공급되어
비정상적인 정치인들이 퇴출되었으면
싸그리 갈아엎어야합니다.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 의 명패 던지기가 화제가 되고 스타 정치인이 된 이후로 마치 뜨기 위해서는 그런 퍼포먼스가 필수인 것처럼 되어버린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그때야 멋있고 강단있는 신출 정치인으로 비춰졌지만 21세기에 되돌아 보면 마냥 좋지만은 않은 모습이죠
국민들이 지금의 품위 없는 정치인을 꾸짖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