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아 개혁신당 대표가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에 대해 '성별의 문제가 아니'며 ‘젠더팔이’라고 일축했다. 허 대표는 8월 27일 본인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딥페이크 문제가 범죄는 맞지만 남녀 특정성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국내차단까지 운운하는 호들갑에 대다수 국민의 반응은 냉랭하다.' 며 '급발진 젠더팔이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었다.' 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도 국회 상임위 질의를 통해 허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나름의 논리를 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의 이용자 숫자가 과대추정 됐다는 논리인데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이 의원은) 텔레그램방 이용자 수가 22만여명에 이른다는 보도를 위협이 과대평가됐다는 근거로 들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 이용자 수가 22만여명에 이른다고 알려진 것은, 우리나라 사람 뿐만 아니라 해외 이용자가 합쳐진 규모라는 취지다. 텔레그램 최고경영자가 올해 초 한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9억명이고, 데이터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300만명이니 텔레그램방 한국인 비율을 따지면, 22만명이 아닌 726명이란 게 이 의원의 계산이다.” (- 한겨레 기사 중)
그러면서 이 의원은 “대통령 관심사항이라고해서 과잉규제 하는 것은 안된다”며 텔레그램에 대한 정부의 규제 강화를 우려했다.
국회의원 이준석의 소관상임위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다. 과방위원이라 굳이 해외 플랫폼 규제를 걱정하는 건가? 과방위원이라면 다국적플랫폼이 이용자 보호(파벨 두로프에 따르면 '안전')만을 지키려다 사실상 범죄를 방관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사태를 먼저 지적하고 국내 이용자에 대한 보완책을 고민하는 것이 맞을 법 한데 말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건, 이준석 의원이 제시한 저 계산법이 텔레그램 최근 딥페이크 사태에 대해 '호들갑 떨지 말라', '남성혐오 조장말라', '무슨 국가재난이냐 미쳐가지고' 라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켰던 유튜버 '뻑가'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다는 사실이다.
('뻑가' 채널은 8월 30일에 유튜브 정책에 따라 채널 수익창출이 중단되었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태연하게 발산하고, 그들의 주장은 언론을 통해 비판없이 재생된다. 그런 주장들이 언론의 포장을 거쳐 이슈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검증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요즘의 비극이다.
이준석 의원이 박근혜 키즈의 선두주자로 정치권에 등장한지 12년이 넘어간다. 그는 항상 객관적 근거로 완전 무장한 것 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틀릴 때가 잦은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허위사실 유포와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꾸준히 논란을 일으켜 퇴출된 한 유튜버의 주장에서 따온 그의 계산법은 텔레그램 전체 이용자 수 대비 한국 이용자 수를 단순 곱한 것에 불과하다. 학부 논문, 아니 리포트도 이런 근거로 쓰면 망신당한다. 이준석(사실은 뻑가) 의 주장은 성착취물 범죄에 있어 한국만의 독보적인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한 계산이며 전제 자체가 오류이기에 완전히 틀렸다.
불법촬영을 의미하는 '몰카' (Molka) 라는 말이 외신에서도 고유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온라인 성범죄에 있어 부끄럽게도 한국은 세계 1위 국가다. 많은 언론들이 이미 인용한 바 있는, 미국의 사이버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즈'가 유튜브, 비메오, 데일리모션 등 영상 공유 플랫폼에 게시된 9만 5820건의 영상을 분석한 <2023년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나 소위 몰카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물의 53%가 한국 연예인을 비롯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소름끼치도록 압도적인 비율이다. 해당 단체는 ‘한국이 딥페이크 음란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 라고 지적한다.
실상이 그런데도 이준석 의원은 20만명은 과장이고 범죄 관련자는 726명 뿐이라고 주장할 건가? 입에 담기도 어려운 지인능욕, 몰카, 딥페이크 합성물이 한국에서 저렇게 압도적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다는 것인데도?
지금 이 시간, 관련 키워드로 텔레그램 채널검색을 해 보니 딥페이크나 합성음란물 관련 오픈 대화방이 수십개고 어떤 방은 참가자가 2천명 넘는 것도 있다. 많이 양보해서, 이준석 의원 말대로 타인 얼굴로 음란물을 만들어 돌려보는 범죄자가 20만명이 아닌 726명 이라고 하자. 20만 보다 적은 숫자니 그건 또 얼마나 괜찮다는 것인가.
정보와 사건이 넘쳐나고 빠르게 업데이트 되는 세상에서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사건의 본질을 지우려고 하는 자가 무려 '공인'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런 태도의 공인은 사건의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통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 앞에 거짓정보를 들이대고, 태연한 얼굴로 '그게 문제가 아니지', '너희의 고통은 과장됐어' 라며 근엄하게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이 공인의 옷을 입고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이 진심으로, 진심으로 우려된다.
지금 전국적으로, 대학부터 초중고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태는 결코 하나의 사건으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이 나라 보편적 시민의 윤리의식을 의심케 하는 엄청난 사건이고 다중위기의 대한민국(저출생, 인구절벽 문제를 떠나서라도) 에서 젊은 세대 남성과 여성이 사회 구성원으로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드는 비극적인 사태다. 그리고 이 참사의 핵심은 엄연히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성착취 범죄 행위'라는 것이다.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성범죄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고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축소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성별을 배제하고서는 이 사태를 바로 볼 수 없다.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그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배제한 채 방법을 찾자고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허은아 대표 메시지에서 주목할 점은 그의 주장('호들갑', '급발진 젠더팔이') 에 쓰인 언어들이 여성운동이 흔히 부딪쳐 온 ‘톤 폴리싱(Tone Policing)’ 공격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과 의미를 외면한채 항의하는 이들의 격한 '태도'만을 문제삼아(부당한 일에 문제제기를 해 본 여성이라면 ‘네가 맞긴 한데 그래도 좀 좋은 말로 해라’ 같은 소리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발언권을 축소시키려는 비열한 전략이다. 성착취 사태로 분노한 이들에게 '호들갑 떨지 마라' 는 사람이 정치인이라니.
젠더, 소수자, 약자 문제에 있어 꾸준히 주류, 2030 남성(더 정확히는 그들의 '피해의식')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자기 명성을 높이는데 이용해 온 이준석 의원이야말로 허은아 대표가 말하는 '젠더팔이' 의 수혜자 아닐까. 이 의원은 이번에는 여성인 허은아 대표를 슬며시 앞장세우고 본인은 객관적 ‘증거’를 갖고 ‘과방위원’으로서 플랫폼 기술의 옹호자인 척을 한다.
“호들갑 떨지 마라, 젠더팔이 하지 마라
20만 아니라 700명 정도다.
기술 플랫폼에 과잉규제 말자.”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공인임을 망각한 한심한 주장인지, 실감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자는 우리 국민으로 실재하고 있지만 텔레그램에 대한 '과잉규제'(외국회사라 가능하지도 않겠지만)는 대통령의 엄포만 있었을 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자신의 얼굴이 포르노 영상에 합성되어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는 피해자들이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해 직접 가해자를 찾아다니고, 영상을 지울 방법을 찾으며 고통받고 있는데 '호들갑' 운운하며 톤 폴리싱 하고 외국회사인 텔레그램 걱정부터 하는 자가 정당 대표고 국회의원이라니. 참, 여러모로 나쁜 정치고 나쁜 정치인들이다. 이 와중에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미성년자 성착취물 방관’ 등 십여개 혐의로 프랑스 정부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뉴스를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소식이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Black lives matter - 블랙 라이브즈 매터(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을 기억한다. 그 때 벌어진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과 집회 현장에서 기어이 맞불집회를 하며 'All lives matter, 올 라이브즈 매터(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를 외친 이들이 있었다. 슬픔과 분노로 저항하는 약자들 앞에서 차분한 얼굴로 만국공통으로 당연한 이야기(모든 생명은 소중해!) 를 굳이 하는 저의는 교활한 악의에서 비롯된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별일 아니야' 라며 입을 막는 공인의 처신은 범죄 그 자체만큼이나 나쁘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재야는 힘을 잃고 원로는 사라진데다 여·야 공히 도덕성은 기대할 것이 없는 정치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이런 아수라장을 견디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건강한 안목이 절실하다. 약자의 정당한 분노를 잠재우려 교언을 늘어놓고, 비본질을 침소봉대해 시민을 정죄하려는 이들을 구분하는 안목과 결단이 필요하다. 비록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김선 전 행정관님의 특별기고문을 주제로 정치신세계에서도 대담했습니다. 25분부터 시작)
이 기사에 1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어휴.... 저런 놈들과 하마터면 같은당이 될뻔했다니!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한 번쯤 읽어보고 고민해 봤으면 하는 기사입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조목조목 맞말.
균형잡힌 훌륭한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기사
국회만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300명 국회의원중에 멀쩡한 사람은 김종민 의원 한분밖에 안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와 모바일에서 드뎌 댓글 써지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몰이꾼들의 손아귀에 놀아나서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싶다. 사안에 바른 진단, 적확한 대안제시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함량미달의 정치꾼들만 득시글거리는 여의도, 이래저래 국민만 불쌍하다.
와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준스기 갈라치기로 정치 시작하고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준스기 6억6천만원 어찌되었는지도 기사 한번 써 주세용~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정곡을 짚은 글입니다. 갈라치기와 이슈몰이에만 능한 자가 대통령까지 꿈꾸는 현실이 암담. 야당 거시기도 마찬가지고
좋은 기사 입니다. 프레임 메이커 칭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미래가 딥페이크로 멍든 미래세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준스가 6억 언제 토해내냐
비교가 될까요?
아파트 단지에 분리 수거 날짜가 정해져 있는 곳에 어느 동은 박스가 안 보이는데 어느 동에는 누가 하나 가져다 놓으면 그곳에 쌓이게 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범죄 행위 숫자가 적든 많든 놔두면 안되죠.
성범죄는 더더욱. 성범죄 피해자 한 분은 평생을 집에서만 지내는데 온 가족이 삶의 여유를 누리지도 못하고 함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경우도 들었습니다.
이준석 뺏지 달고 그러면 안됩니다.
조목조목 잘 짚어주셨네요.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입니다. 정치한다는 것들이.
이준석은 끝까지 편가르기
그의 사상은 반사회적 사회적 생각이 없다
그냥 나의 편이 누가 될것인가만 생각한다
그런면에서는 이재명과 상통한다 그가 권력을 잡는다면 이재명2가 될것으로 보인다
좋은 글 잘 읽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준석이 이 개××는 나쁜 ××라느걸..!!!
김선 전청와대행정관님의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