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축하 이야기는 하루 종일을 해도 지겹지가 않다.
작가의 책이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해 10월 16일 기준으로 150만부가 판매되었다는 소식부터. 황석영 작가, 김애란 작가, 정여울 작가 등 시대와 개성이 제각각인 문학가들의 품격있고 우정어린 축하메시지를 접하는 맛도 쏠쏠하다. 한강 작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 덕에 불황이었던 인쇄소도 풍년이고, 다른 문학 작품들까지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도 기쁘다.
터무니없는 질시와 쉰내 나는 색깔론에 사로잡힌 이들의 볼썽사나운 언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큰 잔치집에는 소란 피우는 이들도 있는 법. 소음도 경사의 일부라 여기며 기쁜 소식에 더욱 눈을 돌려보는 요즘이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소식을 다루는 몇몇 언론의 태도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유감스럽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찬사와 분석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면서, 무례하고 때로 도를 넘는 기사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제 모 언론사가 내보낸, ‘한강 안타까운 근황, 남편과는 오래전에 이혼했다’ 라는 제목의 기사는 ‘안타까운’ 우리 언론의 구태를 보여준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한강 작가의 이혼 소식을 전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나왔는데 대부분의 기사들이 전남편과의 '딩크' 에피소드(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가 수박 맛을 보여주자는 남편의 설득으로 낳았다는, 자전적 작품 속 이야기) 를 낭만적으로 언급하고(그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수상 소감에서 남편 대신 아들만 언급한 것이 아주 중요한 사건인 양 호들갑을 떨며 그의 가정사를 선정적인 톤으로 전한다.
때문에 어제 오늘 사이에 나온 수십여건의 관련 기사들만 보면, 졸지에 한강 작가는 ‘노벨상은 탔지만 이혼해서 안타까운 사람’ 으로 보일 지경이다.
노벨상은 세계적 유명세와 의미가 워낙 큰 덕에, 개인의 수상이지만 국가적인 영예로까지 여겨진다. 예술적 성취와 의미가 다른 상을 비견하긴 어렵지만 단순 지명도로만 보면 노벨상은 영화로는 아카데미상이나 칸영화제, 음악으로는 그래미상과 비슷한 유명세를 가져온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동안 이정도로 명성 높은 상을 수상한 남성 예술가의 부친이나 배우자, 가족관계의 일이 이정도로 시시콜콜하게 드러난 적은? 단언컨대 없었다.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을 알고, 박찬욱 감독이 세 편의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것도 알지만 그들의 가족관계와 가족사에 대해 한강 작가만큼 알지는 못한다. 언론이 굳이 '그런 식'으로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상자의 가족과 혼인 상태가 이토록 주목을 받고 ‘안타깝’네 마네, '결국 알려졌'네 운운하는 무례한 언급을 들을 일인가? 한강 작가의 부친이 그 유명한 한승원 작가라 문학적 가풍과 가족에 대한 보도가 많은 것까지는 당연하지만, 한강 작가의 결혼생활에 대한 몇몇 언론들의 오지랖은 지나치다.
여성이 성공하거나 유명해지면 그의 가족관계, 특히 남편이나 부모가 주목받는 현상이 남성의 경우보다 더 빈번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주로 가정 내 역할에 집중하도록 요구받았고, 사회적·공적 영역에서의 성공은 오랫동안 남성의 일이었다.
따라서, 여성이 성공하거나 공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고 그의 '성공의 비결'에 가족관계나 남편의 역할이 부각되곤 한다.
1997년, 클린턴 정부가 출범하며 매들린 울브라이트 (Madeleine Albright 1937~2022) 가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었을 때, 그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국무장관직에 올랐다는 사실 만큼이나 십여 년 전의 이혼사유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전남편 조셉 울브라이트가 부유한 명문가 출신인데 젊은 여성과 불륜을 저질렀다느니, 장관 취임 기자회견에 전남편이 기자로 참석했다는 등의 가십이 미국 언론을 한동안 장식했다. 장관의 이혼 뒷담화가 얼마나 뜨거운 관심사였던지, 울브라이트는 해외순방 일정으로 전용기를 타고 수시로 대서양을 건너는 와중에도 기자들로부터 “당신의 일(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의 보좌관으로서의 업무)이 이혼의 원인이 되었나.” 는 질문을 받았고 '일하는 여성에 대한 모독'이라며 매우 분개했다. 그가 남자였다면 아무도 묻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울브라이트를 분통터지게 했던 그런 질문은 일하는 여성이라면 흔히 들어온, ‘야근하면 남편 밥은 누가 줘?’, ‘주말에도 일하면 애는 누가 봐?’ 의 잘 포장된 버전이니, 세계최강대국의 외교 안보를 책임진 인물마저 ‘남편 밥은?’ 같은 수준의 말로 가정사를 추궁받은 셈이다.
이처럼, 성취한 여성은 가족과의 관계를 의심받고 일과 가정을 다 잘 해 냈는지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 때로 일에서 최고가 되었다 해도 가정도 잘 꾸리는 ‘슈퍼우먼’ 이어야 일에서의 성공도 ‘진정 의미있는 성공’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 이중 기준은 떄로 여성에게 '극기'에 가까운 노동을 요구한다.
잡지사 에디터로 한참 일하던 때, 어떤 기업의 임원을 인터뷰 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세상 누구나 다 아는 글로벌 대기업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아 눈코 뜰새 없이 바빴지만 아이 학교의 학부모 임원 활동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재정적 손해를 감수하며 회사 바로 옆으로 이사를 했고, 점심시간을 쪼개 학교 배식봉사를 하는 날이 허다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힘들죠. 그렇지만 내가 일 좀 한다고 할 걸(아이 학교 봉사) 안 해주면 애한테 미안하잖아요.
그런 마음이 들면 아무리 일이 잘 되도 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과연, 그의 남편도 그와 같은 의무감을 느꼈을까?
우리사회의 여성에 대한 이중기준과 '수퍼우먼' 이상화는 여성 정치인들의 선거홍보물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한 경력의 다선 의원, 유명 정치인이라도 선거 현수막과 공보물에서는 무조건 '엄마'고 '살림꾼'이어야 한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덕성은 '여성의 세심함', '엄마의 손길', '생활정치' 같은 말로 표현된다. 그렇다 보니 여성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은 ’ㅇㅇ똑순이’가 되고 그 어떤 정책 전문성을 내세운 정치인이라도 선거 때는 ‘ㅇㅇ맘’이 된다. ㅇㅇ구의 일등 살림꾼’, ‘세아이 엄마 정치인’ , ‘엄마의 손길로 우리 지역을 더 잘살게’ 같은 슬로건을 내건 여성 정치인은 근엄한 무표정 대신 활짝, 그렇지만 온화하게 웃어야 하며 전문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노인이나 아이들을 감싸안는 사진이 필수적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군복 입은 아들을 끌어안은 '엄마'로서의 사진을 공보물 뒷표지에 넣은 것을 보고 쓰게 웃은 적이 있다.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은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자녀의 존재와 모성의 모습을 강조하는 이미지 전략이 남성후보자에게는 그 정도로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베테랑 방송앵커에 장관까지 지낸 다선의원이라도 일과 가정을 다 잘 꾸리고 아들도 현역병으로 보내야 진정으로 성공한 여성정치인인 것일까.
여성의 성취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은 여전히 뿌리깊다. 그런 탓에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들이 선거 홍보물에 난데없이 '모성'과 '섬세함' 을 강조하고, 무려 '노벨상 수상자'의 다 지나간 가정사에 제 3자들이 ‘안타까운 소식’ , '결국' 같은 어처구니 없는 제목을 쓰는 무례가 21세기에도 난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써봐야 무엇하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지나간 천일의 야근 동안 '여기 있으면 애는 누가 봐?' , '남편도 잘 있는데 자기가 꼭 승진을 해야 돼?' 같은 소리를 듣고 속으로 삭힐 때가 더 많았으니.
그러나 메아리 없는 외침일지라도 두서없이 적어보는 것은 한강 작가를 둘러싼 기사에 불편함을 느꼈을 이들과 이렇게라도 공감하기 위해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우리의 특성 때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일과 성취가 온전히 인정받는. 그런 밝은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라본다.
이 기사에 2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100배 공감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집 잘하네~
잘 읽고갑니다.
언론사 ㄱㅈㅆ 놈들은 국민을 ㄱ돼지 취급하는데, 국민들 대다수는 그냥 휘둘리거나 또 속아 놀림감이 된다는 슬픈 현실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이런 기사 많이 써주시면 좋겠어요
제 맘 = 기사
감동합니다
일하는 모든 여성들이 늘 갖는 어려움입니다 성평등한 대한민국 만들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믿고 보는 김선 기자님의 글.
명불허전입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공감... 왜 포커스가 이혼으로 가나요 ㅋㅋ 노벨상과 이혼이 무슨 관련이 있죠
공감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님 노벨상 수상을 미처 다 축하하기도 전에 사생활 관련 (무례하고 자극적인)기사들이 쏟아지는 걸 보니 화가 나더라구요. 그런 기사들은 클릭 안하는 것으로 나름의 저항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동안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뭐가 문제인지 잠깐이라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정말 동감하는 내용입니다.
남편에 대한 화젯거리가 아닌 작가 자체/작품에 집중해야하는데 요즘 기사들 보면 남편, 딩크, 이혼을 언급하며 그 부분에만 초점 맞춰 이야기하니 어이가 없어요.
여자는 성공하면 그 이유를 주변 남성에게서 찾아야하나요?정말 환멸나는 사회입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완전 요새 제가 느끼고 있던 부분이였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던 - 입센의 '인형의 집'이 떠올랐어요. 잊고 지내도 될만큼 여성의 지위와 위상이 좋아졌다고 여겼는데, 내재돼 있는 여성의 정체성은 여전히 성역할을 구분짓고 그 역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한강의 가십성 기사들을 대하며 느끼는 그 씁쓸함을 어디에 말할 수 있었을까요? 피해의식으로 비쳐질까 싶어 마땅히 할 말조차도 조심스러워하는 여성들이 넘쳐나는, 현.실.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기사 잘 봤습니다. 남성이 기준이고 여성은 부차인간으로 해석되는 기성기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추의 기준선을 바로 잡아주는 뜻깊은 내용 공감하고 갑니다. 프레임메이커 이 기사로 처음 알게되었는데 자주 찾아보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전문 모두 공감하며 대한민국은 한참 더 꺠어야 합니다
공감합니다 좋은글이네요
전 세계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여성 지우기 심하다고 느껴요. 기사에도 있는 것 처럼 정치인들마저 엄마를 내세우며 홍보물 만드는 게 너무 씁쓸합니다. 언제쯤 되야 여자는 업적 그 자체로만 평가 받고 존경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우리 인식수준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아 네이버 메인에서 보고싶은 기사네요 속이 뻥뚫립니다.
공감가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