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김영선 구속과 이준석 의원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시절 공천개입 폭로 기자회견, 그리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재판 1심 선고까지.
며칠 째 이어진 큰 뉴스들로 정치권이 분주한 와중에 헌법재판소에서는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에 대한 변론이 개시되었다. 11월 12일에 열린 첫 변론에서 헌법재판관들은 탄핵소추를 청구한 민주당 측에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해당영상)
공개된 변론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헌법재판관)은 "국회는 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느냐, 추천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국회 측 장주영 변호인은 약간 망설이다가 "법률상의 의무는 맞는 것 같다” 고 인정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 “(방통위원을) 왜 추천을 안 하십니까?”
장주영 변호인: “저희가 알기론 여야 협의가 안 돼서 그런 것으로……”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 “합의가 안 되면 국회는 아무 일을 안 합니까? 이제까지 안했습니까?”
장주영 변호인: “이거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봐야 되느냐는 문제가 있는데요…….”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 “우리는 지금 정치가 아니라 법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청구인측 이야기는 방통위원은 다섯 명이 구성돼야 하는데 왜 2명 체제 하에서 의결을 하냐, 그러니까 당신(이진숙 위원장) 은 법을 위반했으니 파면을 하라. 이거 아닙니까?
그럼 제가 묻는 겁니다. 국회는 왜 방통위원을 추천을 안 합니까? 그건 법률위반이 아닙니까?”
장 변호인을 대신해 답변에 나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민주당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최민희 위원을 추천을 했는데 대통령이 임명해주지 않았다. 다시 누굴 추천한들 대통령이 임명할까…” 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 대행은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에게 질문하는게 아닙니다. 저는 국회에 질문하는 겁니다.” 라고 차갑게 응수했다.
이 장면은 거대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정치적 극한대립에 마비된 현 정부 국가기관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행령 정치와 거부권 남발로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는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다수 의석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의 폭주를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맞서지도 않는 야당, 그들의 대립 속에서 제 기능을 잃은 국회가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 방기하고 있는지 극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12일 변론에서는 방통위 파행과 관련한 국회의 책임 여부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으며, 헌법재판관들은 '국회가 헌법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설치운영법에 따르면 방통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대통령이 지명한 2명과 국회가 추천하는 3명(여당 1명, 야당 2명) 등 5인의 방통위원이 구성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2023년 8월 부터 방통위는 당시 김홍일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인 체제’로 파행적으로 운영돼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시에 추천한 최민희 후보자의 임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되었고, 야당이 여야 합의 문제와 대통령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방통위원장 추천을 아예 하지 않는 바람에 김효재, 김현 전 방통위원의 후임이 채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취임한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2인 체제로 방통위 운영을 강행하자 민주당이 탄핵소추를 했고, 방통위는 지금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12일 첫 변론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이 국회의 방통위원 지명 지연이 '법률 위반'임을 질타하며 민주당 쪽에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여졌지만 사실은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누구의 잘못도 덜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12일 첫 변론에서는 웃지 못할 장면들이 여럿 나왔다. 이진숙 위원장은 재판정에 앉아 '헌법' 소책자를 보란듯이 펼쳐들었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제적'과 '정원' 의 뜻을 모르는 듯한 발언을 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들은 헌재를, 국회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만의 '희극' 을 지켜보는 국민은 속이 탄다.
헌법재판관들도 할 말이 많았다. 재판관들은 방통위뿐만 아니라 헌재 재판관 선출에 대해서도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헌재가 현재 처한 상황 역시 양당의 극한 대립과 국회의 직무유기가 초래한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9명 중 3명이 공석이다.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르자면 심리를 열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피청구인인 이진숙 위원장이 헌법재판소법 제23조 1항의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했고, 헌재에서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법의 효력을 이진숙 위원장의 탄핵심판 선고 때까지 멈추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정을 위해선 어쨌든 6명의 재판관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1차 변론기일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일단 양쪽의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윤석열의 안하무인 정치와 민주당의 대표 방탄정치,
방통위의 마비와 국회 마비,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에 변론기일까지,
무엇 하나 정상인 게 없는 상황에서 열리는 여야 극한대립의 코미디.
저들끼리의 싸움에 결국 국민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